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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의 행군
Morgan Rice


마법사의 링 #2
음모, 대항책, 미스터리, 용맹한 기사들, 실연의 아픔이 가득한 사랑의 결실, 기만, 배신 등 마법사의 링은 즉각적인 흥행요소를 고루 갖춘 소설이다. 읽는 내내 즐거움이 가득하고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매료된다. 판타지 소설 애독자라면 영구 소장도서로 추천한다. 도서 및 영화 평론, 로버트 메토스. ‘왕들의 행군’은 토르가 어른이 되어 가는 서사시적 고투를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전사로의 여정에 오른 토르는 그의 존재와 그가 가진 힘의 본질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성찰을 한다. 감옥에서 탈출한 토르는 맥길 왕을 향한 또 다른 암살 시도에 충격을 금치 못한다. 맥길 왕의 사망 후 왕국은 혼란에 빠진다. 모두가 나서 왕권 장악을 위한 각축전에 뛰어들며 왕궁은 그 어느 때 보다 가족사와 권력투쟁, 야심, 질투, 폭력, 배신이 난무하게 된다. 반드시 맥길 왕의 자식들 중 한 명이 후계를 이어야 하는 상황에서, 모든 힘의 근원인 운명의 검은 또다시 선택된 자를 판가름 할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순조롭지만은 않다. 왕의 살해 도구가 밝혀지며 암살의 배후가 점점 드러나는 가운데, 엎친대 덮친 격으로 맥길 왕족은 맥클라우드 왕족의 침입이란 새로운 위협을 직면한다. 토르는 그웬돌린 공주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토르와 부대원들은 100일간의 훈련을 앞두고 짐을 싸라는 명령을 받는다. 모든 부대원들은100일간의 지옥훈련을 통해 단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반드시 무사히 살아 돌아와야 하며, 이를 위해 왕의 부대는 캐니언 협곡을 넘어 링의 보호막이 없는 와일드에서 탈투비안 바다로 항해한다. 부대원을 한층 성장시키기 위한 지옥훈련 장소는 다름아닌 용이 엄호하는 안개의 섬이다. 왕의 부대는 무사히 귀환 할 수 있을까? 이들의 부재 동안 링 왕국은 무사할 수 있을까? 또한 토르는 과연 자신의 운명 속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까?‘왕들의 행군’은 정교하게 설정된 배경과 등장인물을 축으로 우정과 사랑, 경쟁자와 구혼자, 전사와 용, 음모와 정치적 권모술수, 성장, 실연, 기만, 야망 그리고 배신을 다루는 장편 서사소설이며 명예와 용기, 숙명과 운명, 마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왕들의 행군’은 연령과 성별에 구분 없이 누구에게나 영원히 뇌리에 각인될만한 판타지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현재 2권부터 13권까지 구독가능!







왕들의 행군

(마법사의 링 연작소설 제 2권)



모건 라이스


모건 라이스 작가 소개



모건 라이스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USA 투데이(USA Today) 베스트셀러 작가로 선정됐다. 저서로는 17권으로 구성된 장편 서사 판타지 연작소설 ‘마법사의 링,’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11권의 연작소설 ‘뱀파이어 저널(집필 중),’ 또 다른 베스트 셀러 1위인 2권의 스릴러 소설 ‘생존 3부작(집필 중)’이 있다. 이 외에도 5권의 장편 서사 판타지 연작소설인 ‘왕과 마법사(집필 중)’를 새롭게 집필 중이다. 모건 작가의 소설은 오디오 북과 인쇄 본으로 출판 됐고, 25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모건 작가는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www.morganricebooks.com (http://www.morganricebooks.com)로 방문하셔서 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무료 소설, 증정품, 무료 앱 다운로드의 혜택과 최신 단독 소식을 제공받으실 수 있으며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한 작가와의 소통이 가능합니다!


모건 라이스 작가에 보내는 찬사



“음모, 대항책, 미스터리, 용맹한 기사들, 실연의 아픔이 가득한 사랑의 결실, 기만, 배신 등 마법사의 링은 즉각적인 흥행요소를 고루 갖춘 소설이다. 읽는 내내 즐거움이 가득하고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매료된다. 판타지 소설 애독자라면 영구 소장도서로 추천한다.”

--도서 및 영화 평론, 로버트 메토스.



“재미있는 서사 판타지 소설.”

—컬커스 리뷰(Kirkus Reviews)



“눈을 뗄 수 없는 무언가가 이 책에서 시작된다.”

--샌 프란시스코 북 리뷰(San Francisco Book Review)



“액션이 가득한 소설…. 흥미로운 라이스 작가의 글과 견고한 전제.”

--퍼블리셔 위클리(Publishers Weekly)



“기상이 넘치는 판타지 ….젊은 성인 시리즈물의 시작.”

--미드웨스트 북 리뷰(Midwest Book Review)


모건 라이스 저서



왕과 마법사

용의 부상 (제1권)

피어나는 용맹 (제2권)

명예의 무게 (제3권)

용맹의 구축 (제4권)

어둠의 왕국 (제5권)



마법사의 링 연작소설

전사로의 원정 (제1권)

왕들의 행군 (제 2권)

용의 숙명 (제 3권)

명예의 눈물 (제4권)

영광의 맹세 (제5권)

용맹의 충전 (제6권)

검의 의식 (제7권)

수여된 무기 (제8권)

주술에 사로잡힌 하늘 (제9권)

방패의 바다 (제10권)

강철 집권 (제11권)

화마에 갇힌 땅 (제 12권)

여왕들의 규칙 (제13권)

형제들의 맹세 (제14권)

인간의 꿈 (제15권)

전사들의 마상 시합 (제16권)

전투의 선물 (제17권)



생존 3부작 연작소설

아레나 원: 슬레이버서너스(제1권)

아레나 투(제2권)



뱀파이어 저널 연작소설

일변 (제1권)

사랑 (제2권)

배신 (제3권)

운명 (제4권)

욕망 (제5권)

약혼 (제6권)

맹세 (제7권)

발견 (제8권)

부활 (제 9권)

갈망 (제10권)

숙명 (제11권)


저작권 © 2013 모건 라이스



본 전자 책은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 저작물입니다. 1976년 미국 저작권법 규정에 따라 허용 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문서의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도 무단복제와 무단전제가 금지되며 데이터베이스 또는 검색 시스템에 저장하거나 저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본 전자 책은 개인 소장용입니다. 재판매나 무단배포는 금지됩니다. 다른 사람과 책을 공유하고자 하는 경우 각각의 추가 복사물을 구매하십시오. 직접 구매하지 않았거나 개인 소장용이 아닌 책은 반환해주시기 바라며 개인 소장용을 구입하십시오. 저자의 노력을 존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이름, 등장인물, 사업, 기관 명, 장소 명, 이벤트, 사건 등은 모두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산물이자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모든 이름과 생존 및 죽음에 대한 유사한 상황은 전적으로 우연입니다

Shutterstock.com.의 허가 아래 사용된 표지 이미지 저작권 Bilibin Maksym 소유.



한글번역 김성희








목차



제1장 (#u34c2b21b-db2a-59d7-925f-f7b61012cb68)

제2장 (#u2bd3a594-0477-5720-b6a9-a2f88dea6f36)

제3장 (#u0552a71b-0cbe-5260-a83a-592ad0087164)

제4장 (#u477f2b1c-3e72-555e-84c0-a8f2de78f489)

제5장 (#u4cdb341a-d465-5703-b1c2-3cc7ed3d73a8)

제6장 (#ue2bfb357-2e18-5084-8883-910398aba67b)

제7장 (#litres_trial_promo)

제8장 (#litres_trial_promo)

제9장 (#litres_trial_promo)

제10장 (#litres_trial_promo)

제11장 (#litres_trial_promo)

제 12장 (#litres_trial_promo)

제13장 (#litres_trial_promo)

제14장 (#litres_trial_promo)

제15장 (#litres_trial_promo)

제16장 (#litres_trial_promo)

제17장 (#litres_trial_promo)

제18장 (#litres_trial_promo)

제19장 (#litres_trial_promo)

제20장 (#litres_trial_promo)

제21장 (#litres_trial_promo)

제22장 (#litres_trial_promo)


“내 앞에 보이는 것이 단검인가,

칼자루가 내 손을 향해 있는가? 이리 와라, 잡아보자.

어찌 잡히지는 않는데 계속 내 눈앞에 있냔 말이냐.”



—윌리엄 셰익스피어

맥베스 中에서




제1장


맥길 왕은 과음으로 비틀거리며 침실로 향했다. 눈앞의 방안은 빙빙 돌고 있었으며 무리하게 축제를 즐긴 탓에 고개까지 축 늘어졌다. 상의가 반은 벗겨져 있는 이름 모를 여자가 키득거리며 맥길 왕에게 찰싹 붙어 한 손으로 그의 허리를 감싸고 침대로 이끌었다. 곁을 지키던 시중 두 명이 방문을 닫으며 재빠르면서도 조용하게 자리를 비켰다.

맥길 왕은 왕비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같이 취한 날에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더 이상 왕비와는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일이 드물었으며, 왕비는 특히 축제가 있는 날 만찬이 길어지면 따로 마련된 자신의 침실로 바로 향했다. 그녀는 맥길 왕이 얼마나 여색이 짙은지 알고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왕이며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왕국을 통치해왔으니까.

맥길 왕은 여자의 시중을 받으며 밤을 보내고자 마음먹었지만, 방 주변이 빠르게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아 결국 여자를 밀쳐냈다. 더 이상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저리 비키거라!” 왕은 명령을 내리며 그녀를 밀어냈다.

놀라서 상처받은 여자는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춰 있었고, 순간 문이 열리며 시중들이 들어와 양쪽에서 여자의 팔을 잡고 밖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저항했지만, 시중들이 그녀를 문 밖으로 데리고 나가며 문을 닫자 울부짖던 여자의 소리도 잦아들었다.

맥길 왕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두통이 잦아들길 바라며 고개를 숙여 양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술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렇게 빨리 두통이 찾아오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오늘은 뭔가 달랐다. 모든 게 빠르게 변했다. 축제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토르가 나타나 모든 걸 망쳐 놓기 전까지 그는 엄선된 고기와 도수가 높은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바보 같은 꿈 이야기를 언급하며 축제를 망쳤고, 이후에는 겁도 없이 감히 왕의 손에서 술잔을 쳐냈다.

이내 쏟아진 와인을 핥던 개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즉사했다. 두려움이 엄습한 건 바로 그때부터였다. 마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누군가가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는 생각이 번쩍 들며 뇌리를 강타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경호를 뚫고, 왕의 술과 음식에 손을 대다니. 독살의 음모에서 간발의 차로 목숨을 부지했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몰아쳤다.

때맞춰 지하 감옥으로 끌려가던 토르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내 그것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직접 독을 타지 않은 이상 술잔에 독이 든 사실을 토르가 알리 만무했다. 또는 어떻게든 토르가 독살에 연루되어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맥길 왕은 토르에게 깊이 내제된 알 수 없는 이상한 힘이 있다는 걸 상기했다. 그 힘은 너무나 신비롭기 때문에 아마도 토르가 사실을 말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꿈에서 본 것일 수도 있었다. 어쩜 토르가 정말로 왕을 살려낸 것이고 그런 왕은 자신에게 충성을 받힌 한 사람을 지하감옥에 투옥시킨 것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맥길 왕은 이마에 자리잡은 깊게 패인 두 줄의 주름을 문지르며 생각을 정리해보려 애썼다. 그러나 무리하게 과음한 탓에 머리 속이 흐릿하고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방안은 너무 더웠다. 후덥지근한 여름 밤, 맥길 왕은 오랜 시간 술과 만찬을 즐긴 덕에 온몸에 열이 한껏 달아올랐고 땀이 찼다.

맥길 왕은 외투를 풀고 상의를 벗었다. 받혀 입은 셔츠를 제외하고는 모두 벗어버렸다. 이마와 수염에 난 땀을 닦아낸 뒤, 등을 기내고선 큼지막하고 무거운 부츠를 하나씩 벗어버렸다. 허공에 노출된 발가락을 말아 안쪽으로 구부렸다. 왕은 그 자리에 앉아 크게 심호흡을 하며 균형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과음한 탓에 배가 나와 답답했다. 다리를 크게 들어올려 침대에 몸을 쭉 뻗고 베개를 베고 누웠다. 한숨을 깊게 내쉬고 더 이상 눈앞이 빙빙 돌지 않길 바라며 고개를 올려 천장을 바라봤다.

누가 나를 헤치려 했단 말인가? 또다시 같은 의문이 들었다. 그는 토르를 자식처럼 아꼈으며, 마음 한 켠으로는 토르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의 짓인지 궁금했다. 무슨 속셈을 품고 그랬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또다시 그런 일을 벌일지 알고 싶었다. 과연 자신을 안전한 것일까? 아르곤의 예언이 들어맞은 것인가?

의문에 대한 답을 알 길이 막막하다고 느껴지자 맥길 왕의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만약 그의 정신이 조금만 더 맑았다면 누군지 알아낼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왕은 내일 아침 고문들을 불러들여 조사에 착수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맥길 왕이 마음 속에 품은 질문은 누가 그의 죽음을 바라는가가 아닌, 누가 그의 죽음을 막고 싶어하는 가였다. 왕실은 맥길 왕의 왕좌를 노리는 자들로 득실거렸다. 욕망이 넘치는 장군들, 교묘한 술책을 서슴지 않는 위원들, 권력에 눈이 먼 귀족들과 영주들, 첩자들, 오랜 앙숙들, 맥클라우드 왕국에서 보내온 암살자들, 그리고 와일드의 괴물들까지. 아니 어쩌면 그보다 가까운 곳에 왕권을 탈환하려는 자들이 있을 수 있었다.

서서히 졸음이 몰려들며 눈꺼풀이 무거워졌지만, 무언가가 그의 주의를 끌어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인기척이 느껴져 혹시 시중들이 아직 방안에 있는지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맥길 왕은 혼란스러움에 눈을 깜빡였다. 시중들은 항시 절대 왕의 곁을 떠나는 일이 없었다. 사실, 언제부터 방 안에 혼자 있기 시작했는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맥길 왕은 주위를 물린 기억이 없었다. 더욱 이상한 점은 침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었다.

순간 저 멀리 방 반대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왕은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벽을 따라 그림자 밖으로 서서히 나오며 횃불에 모습을 드러낸 큰 키의 마른 남자가 보였다. 그는 검은 망토를 걸치고 망토에 이어 붙은 모자를 머리 위로 깊숙이 덮고 있었다. 맥길 왕은 눈 앞에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재차 감았다 떴다. 처음에는 그저 횃불에 흔들리는 그림자일 뿐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잠시 뒤 그 형상은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하더니 빠르게 왕의 침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맥길 왕은 어두운 방안에서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전사로써의 자질이 탁월한 왕은 허리춤에 손을 뻗어 검이나 혹은 단검을 뽑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옷을 거의 벗어 던진 채였고 아무런 무기도 없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침대 위에 무방비 상태로 앉아 있었다.

그 형상의 움직임은 이제 더욱 빨라져 마치 야행성 뱀과 같은 소름 끼치는 움직임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맥길 왕은 몸을 일으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방은 여전히 빙글빙글 돌고 있었고 여전히 술이 깨지 않아 그 얼굴을 정확히 알아채기 힘들었지만, 머지않아 그는 그 형상이 자신의 아들임을 알 수 있었다.

개리스?

개리스 왕자가 예고도 없이 이렇게 늦은 밤에 이곳에 온 이유를 생각하자 갑작스런 공포가 맥길 왕의 심장을 엄습했다.

“나의 아들아?” 맥길 왕이 말을 건넸다.

맥길 왕은 그의 눈빛에서 살기를 엿봤다. 그것 만으로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그는 침대 밖으로 재빨리 몸을 피했다.

그러나 그 형상의 움직임은 더욱 신속했다. 그는 맥길 왕이 손을 뻗어 자신을 방어할 겨를도 주지 않고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횃불에 반사된 금속 칼날이 빠르게, 아주 빠르게 허공을 뚫고 왕의 심장을 깊숙이 찔렀다.

맥길 왕은 깊고 어두운 격통의 외침을 질렀고, 자신의 비명 소리에 스스로 놀랐다. 전장에 나섰을 때 그곳에서 수도 없이 들어왔던 그런 비명이었다. 그것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전사의 비명이었다.

차가운 금속이 근육을 짓눌러 그의 갈비뼈를 으스러뜨리고 피와 한데 뒤섞여 더욱 깊숙이, 더더욱 깊숙이 몸 속으로 파고들어왔다. 끝도 없이 계속 패일 것만 같은, 그간 상상도 해보지 못했건 아찔한 고통이 전해져 왔다. 숨을 쉬기 힘들어 힘겹게 숨을 크게 헐떡이자 뜨겁고 짠 내나는 피가 그의 입을 가득 채워 더욱 힘겹게 숨을 이어갔다. 맥길 왕은 사력을 다해 고개를 들어 망토에 가리워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순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짐작했던 인물이 아니었다. 자신의 아들이 아닌 다른 인물이었다. 분명히 아는 자였다. 누군지 기억이 나진 않았지만 분명 왕과 가까운 인물이었다. 마치 자신의 아들을 꼭 닳아있었다.

이름을 기억해내려 애썼지만 혼란으로 머리 속이 뒤엉켰다.

맥길 왕을 사력을 다해 팔을 들어 자신을 누르고 있는 남자의 어깨를 밀었다. 왕은 자신에게서 오래된 전사의 기운과 조상의 힘을 느꼈고 자신을 왕으로 이끈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힘이 순간 발휘되는 걸 느꼈다. 모든 사력을 동원해 왕은 한번에 암살자를 밀쳐낼 수 있었다.

암살자는 맥길 왕이 생각했던 것 보다 체격이 마르고 약했다. 그는 울부짖으며 중심을 잃고 뒷걸음질 쳤고 방 한가운데로 이동했다. 맥길 왕은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세웠고 손을 뻗어 가슴에서 칼을 뽑아냈다. 뽑힌 칼을 던지자 돌로 된 바닥 위로 찡 하는 소리와 함께 부딪히며 칼자루가 튀어올라 멀리 있는 벽으로 튕겨나갔다.

맥길 왕이 암살자에게 다가가자 얼굴을 가리웠던 망토가 벗겨진 암살자는 뒷걸음질 치며 공포에 질릴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암살자는 잠시 멈춰 단검을 주운 뒤 빠르게 밖으로 도망쳤다.

맥길 왕은 그의 뒤를 쫓으려 했지만 그러기엔 암살자가 너무 빨랐으며 순간 가슴에 밀려들어오는 통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었다.

홀로 방에 남은 왕은 고개를 숙여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손바닥을 타고 흐르는 모습을 바라봤다. 왕은 무릎을 꿇었다.

체온이 점점 떨어져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병사들을 부르기 위해 상체를 뒤로 젖혔다.

“이봐 라,” 희미한 소리만 울렸다.

위엄 있는 그의 목소리를 뱉어낼 수 있도록 극도의 괴로움을 견디며 맥길 왕은 다시 한번 크게 숨을 마셨다. 왕의 위엄이 깃든 그 목소리를 내야 했다.

“이봐 라!” 날카롭게 소리쳤다.

저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멀리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옴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순간 다시 맥길 왕의 눈 앞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술기운이 원인이 아니었다.

맥길 왕의 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건 갑자기 튀어나와 얼굴에 부딪힌 차가운 돌 바닥이었다.




제2장


토르는 상당한 무게의 커다란 목재 문에 붙어있는 철문고리를 꽉 쥔 채 온 힘을 다 쏟아 부으며 힘껏 밀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서서히 열리며 왕의 침실이 드러났다. 토르는 침실로 들어섰다. 문턱을 넘을 때는 팔에 난 털이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는 엄청난 어둠의 기운이 마치 안개처럼 깃들어 있었다.

토르가 횃불이 탁탁 거리는 타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침실 안으로 몇 걸음 들어섰을 때, 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진 시신이 보였다. 토르는 이미 그가 맥길 왕이라는걸, 이미 살해당한 뒤라는걸, 자신이 너무 늦었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토르는 근위대가 대체 어디에 있기에 그 누구도 왕을 구하러 오지 않은 것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시신에 가까이 다가서자 다리에 힘이 풀린 토르는 바닥에 주저 앉아 이미 차갑게 식은 맥길 왕의 어깨를 들어 몸을 다시 뉘였다.

한때 위엄을 떨쳤던 맥길 왕이, 눈도 감지 못한 채 싸늘한 주검으로 이곳에 쓰러져있었다.

토르가 고개를 들자 어디선가 나타난 시중 한 명이 눈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토르가 축제 때 보았던 루비와 사파이어를 이어 장식한 커다란 보석이 박힌 순금 술잔을 들고 있었다. 그 시중은 토르를 바라보며 맥길 왕의 가슴 위로 술잔에 담긴 술을 천천히 쏟아버렸다. 와인은 토르의 얼굴위로 튀었다.

그때 매의 울음소리가 들려 돌아보자 토르의 매, 에스토펠레스가 왕의 어깨에 날아 앉아 토르의 볼에 튄 와인을 핥았다.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들어보니 그곳에는 아르곤이 근엄한 표정으로 토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손에는 반짝이는 왕관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아르곤은 가까이 다가와 토르의 머리 위에 왕관을 씌웠다. 왕관의 무게가 토르의 머리 위를 짓누르며 금속이 그의 관자놀이를 에워쌌다. 토르는 놀란 얼굴로 아르곤을 바라봤다.

“이제 그대가 왕이오,” 아르곤이 선언했다.

토르는 영문을 몰라 눈을 깜빡였고, 다시 눈을 떴을 땐 그의 앞에 서부 왕국의 모든 신하들과, 수백만 명의 성인 기사와 견습기사로 구성된 실버가 모두 토르의 얼굴을 바라보며 왕의 침실 안에 늘어서 있었다. 모두 하나같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바닥에 숙인 채 토르에게 몸을 낮추고 있었다.

“폐하,” 모두가 함께 그를 폐하로 칭했다.

토르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꼿꼿하게 상체를 일으켜 앉은 토르는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살폈다. 주변은 어두웠고 습했다. 토르는 돌 바닥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저 멀리 철재 빗장과 함께 그 너머로 희미하게 타고 있는 횃불을 확인했다. 그제서야 이곳이 지하감옥이라는 사실이 기억났다. 그는 축제에서 이곳으로 끌려와 갇혀 있었다.

더불어 자신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교도관이 생각났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게 분명했다. 그러나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토르는 몸을 일으켜 크게 심호흡을 하며 방금 꾼 악몽을 떨쳐버리기 위해 노력했다.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 맥길 왕의 죽음이 현실이 아니기만을 바랬다. 주검이 된 왕의 모습이 토르의 마음 한 켠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는 진정 무언가를 본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망상일 뿐인가?

누군가가 토르의 발바닥을 툭툭 차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어보니 웬 형상이 토르 앞에 서 있었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곁에 있는 누군가가 말을 건넸다. “몇 시간째 기다렸다고.”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토르는 자신의 또래쯤 되는 남자아이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마르고 작은 체구에 야윈 볼 위로 곰보자국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초록빛 눈동자에서는 친절함과 명석한 분위기가 뿜어졌다.

“난 머렉이야,” 소년이 말했다. “네 감방 동기지. 넌 여기 왜 들어왔니?”

토르는 다시 허리를 세워 똑바로 앉아 지혜롭게 대처하려 노력했다. 벽에 허리를 기대고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축제 때의 일들을 상기시켰다.

“네가 왕을 죽이려고 했다던데,” 머렉이 말을 이었다.

“저 놈이 분명 왕을 죽이려 했어, 저 놈이 이 감방에서 나오는 순간 우리가 저 녀석을 뼈도 못 추리게 만들어 놀 거야,” 누군가가 으르렁거리며 대꾸했다.

여기저기서 쇠사슬 소리가 철창에 부딪히며 철커덕거리는 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 감방으로 나열된 통로를 바라보니 기괴한 형상을 한 죄수들이 창살 사이로 머리를 내밀며 토르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희미한 횃불에 비쳤다. 대부분의 죄수들은 수염이 가득했고 치아가 몇 개씩 빠져 있었으며 이곳에서 족히 몇 년은 보낸 것만 같았다. 끔찍한 광경이었기에 토르는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진정 이곳 지하감옥에 수감된 것인가? 영원히 저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꼼짝없이 갇히게 된 것인가?

“저 사람들은 걱정 안 해도 돼,” 머렉이 토르를 안심시켰다. “이 철창 안엔 너랑 나 뿐이야. 다른 죄수들은 이곳에 못 넘어와. 그리고 네가 왕을 독살하려 했다고 해도 난 상관 안 해. 나야말로 왕을 독살하고 싶거든.”

“난 왕을 독살하지 않았어,” 토르가 분을 참지 못하고 대답했다. “난 누구도 독살하지 않았어. 나는 폐하를 살리려고 했을 뿐이야. 나는 그저 술잔을 엎어버린 것뿐이라고.”

“그럼 술잔에 독이 든 건 어찌 알았는데? 저 멀리서 대화를 엿듣던 누군가가 외쳤다. “마법이라도 부렸냐?”

감방 전체에 조롱 섞인 비웃음이 울려 퍼졌다.

“저 녀석이 초능력자래!” 다른 죄수 하나가 비웃으며 소리쳤다.

나머지 죄수들이 한껏 비웃기 시작했다.

“다들 헛다리 짚었어, 그냥 어쩌다 얻어 걸린 거래!” 다른 죄수가 맞받아치며 조롱했다.

비난에 분개한 토르는 모든 것을 바로 잡고 싶었다. 그러나 그래 봐야 아무 소용 없는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런 죄수들한테 변명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머렉은 다른 죄수들과 달리 의심 없이 토르를 유심히 살폈다. 마치 논쟁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난 네 말을 믿어,” 머렉은 나지막이 토르에게 말했다.

“정말 그래?” 토르가 되물었다.

머렉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쨌든, 네가 왕을 독살하려 했었다면 그렇게 바보처럼 왕이 알게끔 행동했겠어?”

머렉은 뒤돌아 감방 구석으로 조금 걸어가더니 자리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대며 토르를 바라봤다.

이제는 토르가 궁금해졌다.

“너는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야?” 토르가 물었다.

“나는 소매치기야,” 머렉은 자랑스러운 듯 대답했다.

토르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도둑을 본 건 처음이었다. 토르는 남의 물건을 훔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을뿐더러, 실제로 남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 항상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었다.

“왜 훔치는 거야?” 토르가 물었다.

머렉은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가족은 하루하루 끼니조차 때우기 힘들어. 먹을 게 하나도 없어. 나는 학교 근처에도 못 가봤고, 딱히 아는 기술도 하나도 없어. 그저 훔치는 게 내가 아는 전부야. 다른 건 안 훔쳐. 그냥 음식만 훔치는 거야. 수년 동안 안 잡히고 살았는데 결국 잡혔네. 사실 이번에 잡힌 게 세 번째야. 세 번째가 정말 최악이지.”

“왜 최악인데?” 토르는 궁금했다.

머렉은 대답하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토르는 머렉의 눈에 눈물이 맺힌 걸 볼 수 있었다.

“왕은 법을 엄하게 만들었어. 예외는 없어. 세 번 째 걸리면 손이 잘려.”

토르는 겁에 질렸다. 그는 머렉의 손을 확인했다. 두 손 모두 아직 멀쩡했다.

“아직 내 손을 자르러 오지 않았어,” 머렉이 말했다. “그렇지만 곧 올 거야.”

토르는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 머렉은 멋쩍은 듯 고개를 돌렸고 토르도 더 이상 그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 시선을 돌렸다.

토르는 벌어진 사건들의 조각을 맞춰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아 양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너무 많은 일이 빠르게 일어난 지난 며칠이 마치 소용돌이 같았다. 한편으론 정당한 행동을 해냈다는 성취감도 들었다. 그는 미리 왕의 독살을 예측하고 왕을 구해낸 것이다. 어쩌면 운명이 어떻게든 바뀌어버렸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아마도 운명의 방향을 조금은 틀어버린 것일 수도 있었다. 토르는 왕을 구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한편, 토르가 처한 환경은 지하 감옥이었고 결백을 증명할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토르의 모든 희망과 꿈은 산산조각처럼 깨져버렸고 기사가 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이제는 그저 평생을 이곳에서 썩지만 않는다면 감사할 따름이었다. 토르를 진심으로 아들로 여겨준, 토르가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라고 기댔던 맥길 왕이 자신을 독살의 배후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메어졌다. 더 최악인 건 그웬돌린 공주의 오해였다.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을 상기했다. 어떻게 공주가 자신을 사창가나 드나드는 사람으로 오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마치 토르 인생에서 일어난 모든 행운들이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 이 모든 일들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찌됐든 그는 정의와 선의를 따랐을 뿐이었다.

토르는 자신이 앞으로 어떤 처벌을 받을지 알 수 없었고 상관도 없었다. 그저 지금 당장은 결백을 밝히고 싶었다. 사람들이 그가 왕을 음해하려 하지 않았다는 걸, 자신이 가진 예지력으로 미래를 봤다는 걸 알아주길 원했다. 자신의 미래를 알 순 없었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여기서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든.

토르가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묵직한 부츠가 돌 바닥을 두드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열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잠시 뒤 흐릿하게 토르를 이곳까지 끌고 와 얼굴을 가격했던 교도관의 모습이 보였다. 그를 보자 아까 맞았던 볼이 욱신거렸다. 순간 그때의 통증이 상기되며 신체적인 고통이 동반됐다.

“글쎄, 이 녀석이 폐하를 죽이려던 게 아니라면,” 교도관이 자물쇠에 쇠로 된 열쇠를 돌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토르를 쏘아봤다. 몇 번이나 열쇠를 여는 소리가 울린 뒤에야 감방 문이 열렸다. 교도관은 한 손에는 족쇄를 들고 허리에 작은 손도끼를 차고 있었다.

“너도 곧 차례가 올 거야,” 교도관은 토르에게 으르렁 거리며 말을 건 낸 뒤 머렉을 바라보며, “지금은 네 차례지, 도둑놈의 새끼야. 이미 세 번 째지,”라고 말하며 악의가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예외는 없어.”

교도관은 머렉에게 다가가 거칠게 그를 잡아 끌어 한 손을 뒤로 꺾고 족쇄를 채운 뒤 나머지 족쇄를 벽에 붙은 고리에 고정시켰다. 머렉을 비명을 질렀고 족쇄를 벗어나려 거칠게 저항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교도관은 머렉을 뒤에서 꽉 잡아당겨 나머지 한 손을 잡아 석조 선반에 올려놨다.

“이제 더 이상 도둑질하면 안 된다는 걸 배우겠지,” 교도관이 으르렁거리며 내뱉었다.

교도관은 벨트에 찬 손도끼를 꺼내 높이 쳐들었다. 한껏 벌린 입 사이로 사나운 표정 속에 흉물스럽게 뻗은 이가 드러났다.

“안돼!” 머렉이 악을 썼다.

교도관이 머렉의 손목을 노리며 손도끼를 내리칠 때 토르는 공포에 휩싸인 채 꼼짝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이제 저 불쌍한 소년의 한 손은 가난 속에서 살아보고자 발버둥치며 가족들을 부양했던 죄로 영원히 잘려 나가게 된다. 이와 같은 부당한 정의가 토르를 분노케 했다. 가만히 두고 봐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불공평했다.

토르는 분개한 마음과 함께 발끝에서부터 손바닥까지 열기가 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시간이 더뎌진 것만 같았고 자신의 움직임이 교도관보다 빨리지는 걸 느꼈다. 여전히 교도관의 손도끼는 허공 위에 떠 있었으며 초 단위로 시간의 흐름이 감지됐다. 손바닥에서 타오르는 듯한 에너지가 느껴진 토르는 교도관을 향해 에너지를 내던졌다.

토르는 노란 빛의 동그란 형상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며 자신의 손바닥에서 허공을 가르고 교도관의 얼굴로 발사되는 광경을 놀란 얼굴로 지켜봤다. 노란 에너지는 교도관의 머리에 부딪혔고, 그와 동시에 교도관은 손도끼를 떨어뜨리며 감방 구석으로 날아가 벽에 부딪히며 쓰러졌다. 교도관의 손도끼가 머렉의 손목을 자르기 불과 몇 분의 1초 만에 토르는 머렉을 구해냈다.

머렉은 놀란 눈으로 토르를 바라봤다.

교도관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머리를 저으며 몸을 일으켰고 토르를 체포하려 했다. 그러나 토르는 어떠한 힘이 토르의 몸 속에서 불타오르는 걸 느꼈고 교도관이 토르 앞에 다가서자 토르는 앞으로 달려나가 교도관의 가슴을 발로 가격했다. 토르는 자신의 몸 속에 알 수 없는 힘이 내재됨을 느꼈고 큰 거구의 교도관을 발로 찼을 때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교도관은 공중위로 날아가 벽에 부딪힌 뒤 그대로 뻗어버렸다. 이번에는 정신까지 잃었다.

머렉은 넋이 나간 채로 서 있었지만 토르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토르는 손도끼를 집어 올려 재빠르게 머렉의 족쇄를 부셨다. 쇠사슬로 된 족쇄가 갈라지며 어둠 속에 불꽃이 크게 일어났다. 머렉은 몸을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 바닥에 떨어진 족쇄를 보고는 족쇄에서 풀려났음을 실감했다.

머렉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토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떻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머렉이 고마움을 전했다. “네가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뭐든, 또는 네가 누구든, 아니 무엇이던지 상관없이 넌 날 구해줬어. 네게 신세를 졌어. 난 절대 은혜를 가볍게 넘기지 않아.”

“넌 신세 같은 거 진 거 없어,” 토르가 대답했다.

“틀렸어,” 머렉이 토르의 팔뚝을 잡으며 반박했다. “넌 이제 내 형제야. 그리고 난 꼭 이 빚을 갚을 거야. 어떻게든지. 언젠가는 말이야.”

이 말을 남긴 채 머렉은 재빨리 열려 있는 감방을 나와 소리치는 나머지 죄수들의 함성을 들으며 통로를 뛰어나갔다.

토르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정신을 잃은 교도관을 확인한 뒤 자신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머지 죄수들의 아우성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토르는 감방 밖으로 나와 양쪽으로 나 있는 통로를 한번씩 살핀 뒤 머렉의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어찌됐든 교도관들이 토르와 머렉을 한번에 다 잡게 만들 수는 없었다.




제3장


토르는 어둠 속에서 혼잡한 왕국의 거리를 걸었고 주변의 시끄러운 소란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거리 위는 잔뜩 흥분한 움직임으로 군집을 이룬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성곽의 주종 소리가 계속해서 울리는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어둠을 밝혔고 얼굴에는 일제히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일분마다 한번씩 울리는 종소리는 매우 짧았고 토르는 그 소리가 정확히 죽음을 의미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왕국에서 이렇게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종을 울려 승하를 알릴만한 인물은 오직 맥길 왕 한 사람뿐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이 심장이 고동쳤다. 꿈에서 본 단검이 눈 앞을 스쳤다. 그것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알아내야만 했다. 그는 손을 뻗어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던 소년을 붙잡았다.

“어디 가는 거니?” 토르가 물었다. “이 혼란은 다 뭐지?”

“못 들었어요?” 어쩔 줄 몰라 하며 소년이 되물었다. “폐하께서 오늘내일 하신다고요! 칼에 찔리셨어요! 지금 사람들이 왕국 앞에서 소식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잖아요. 만약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 큰일난 거라고요. 상상이나 할 수 있어요? 폐하께서 안 계신 이 왕국을요?”

이 말을 끝으로 소년은 토르의 손을 밀쳐내고 다시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결코 수긍할 수가 없었다. 토르는 고동치는 심장을 느끼며 그대로 얼어 붙었다. 그의 꿈들, 그의 예감들이 모두 허구가 아니었다. 그는 미래를 본 것이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그리고 그 사실이 소름 끼쳤다. 토르에게 내재된 힘은 그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욱 미묘했고 날이 갈수록 그 능력도 커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어떤 결말을 가져올까?

토르는 그 자리에 서서 이제 어디로 가야 할 지 고민했다. 지하 감옥을 탈출하긴 했지만 이제 어느 방향으로 길을 잡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조금만 있으면 모든 왕실의 병사들이 그를 찾아 나설 것이다. 토르가 탈출했다는 것 자체가 더욱 많은 의심을 사게 만들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토르가 감금된 사이 폐하가 피습을 당했다는 사실이 토르의 무죄를 입증해줄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는 이 모든 것이 토르를 음모의 동조자로 보이게 만들 것인가?

토르는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었다. 명백한 건, 왕국에 있는 그 누구도 지금 이성적인 생각을 접할 기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마치 모든 사람들에게서 분노에서 비롯된 살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아마도 토르가 그 희생양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숨을 곳이 필요했다. 이러한 폭풍전야에서 몸을 피하고 무죄를 입증할만한 장소가 필요했다. 가장 안전한 곳은 아마도 이곳에서 가장 먼 곳임이 분명했다. 그는 떠나야 했다.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 몸을 숨기거나 또는 그 보다 더 먼 곳으로, 갈 수 있는 한 이곳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 했다.

그러나 토르는 안전한 길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타고난 천성 때문이었다. 토르는 이곳에 머물러 무죄를 입증하고 왕의 부대에 남길 바랬다. 그는 겁쟁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도망치지 않았다. 토르는 암살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그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째서 페하의 죽음과 관련한 꿈을 꾼 것인가? 또한 폐하께서는 단검에 습격을 받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독살로 운명하시는 꿈을 꾼 것인가?

그 자리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토르의 머릿속에 리스 왕자가 떠올랐다. 리스 왕자는 토르를 병사들에게 넘기지 않고 어쩜 몸을 피할 곳까지 마련해줄지도 모르는 토르가 믿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리스 왕자는 자신을 믿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리스 왕자는 폐하에 대한 토르의 충심이 진심이란 걸 알고 있었고, 그 누군가가 토르의 무죄를 밝혀 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리스 왕자 한 명뿐이었다. 리스 왕자를 찾아야 했다.

토르는 뒷골목으로 뛰어갔다. 붐비는 인파를 이리저리 뚫으며 성문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왕궁으로 향했다. 리스 왕자의 거처는 외각 도시 성벽과 가까운 동문 쪽이었다. 리스 왕자가 거처에 머물고 있기만을 희망했다. 만약 그렇다면 리스 왕자가 주의를 돌려 토르가 성 안으로 들어가게끔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토르는 만약 자신이 이 거리 위에서 조금만 더 지체했다가는 곧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군중들이 토르를 알아보기라도 한다면, 모두가 달려들어 토르를 갈기갈기 찢어놓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거리를 지나 또다시 거리를 지나며 여름 밤 토르의 발이 진흙 위에서 미끄러졌을 때 마침내 토르는 외각 성벽에 다다랐다. 토르는 성벽에 바짝 몸을 붙여 곳곳마다 성벽 위에서 성을 감시하고 있는 병사들의 시선 아래로 달렸다.

리스 왕자의 거처에 다다른 토르는 손을 뻗어 매끈한 작을 돌을 하나 주웠다. 다행히도 토르에게는 병사들이 미처 압수하지 못한, 오랜 시간 토르가 지니고 다녔던 새총이 있었다. 토르는 허리춤에서 새총을 꺼내 돌을 걸어 목표물을 향해 발사했다.

빈틈없는 솜씨로 토르는 궁궐의 벽을 넘어 열려있는 리스 왕자의 거처로 돌을 던졌다. 던진 돌이 내부 유리창에 부딪힌 소리가 들렸고 토르는 때마침 그 소리를 들은 병사들을 피해 성벽 쪽으로 몸을 숙여 피했다.

한참 동안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토르의 심장이 요동쳤다. 리스 왕자가 방에 없는 듯 했다. 만약 그렇다면 더 이상 안전한 은신처를 찾을 수 없기에 토르는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토르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요동치는 심장을 붙들며 숨죽여 기다리다, 드디어 리스 왕자의 창문이 열리는 광경을 포착했다.

토르는 몸을 일으켜 서서 성벽에서 몇 걸음 앞으로 나와 한 손을 번쩍 들며 손짓했다.

바깥을 살피던 리스 왕자가 토르를 발견했다. 토르임을 확인하자 리스 왕자의 얼굴이 밝아졌다. 멀리서도 횃불 덕에 리스 왕자의 표정을 살필 수 있었다. 토르는 리스 왕자의 얼굴에서 기쁜 기색을 살피자 마음이 놓였다. 그것 만으로 충분히 리스 왕자가 토르를 병사들에게 넘기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리스왕자는 토르에게 기다리라는 손짓을 보냈고 토르는 다시 성벽 쪽으로 몸을 숨겼다. 병사들이 토르 쪽으로 순찰을 돌아 토르는 무릎을 굽혀 바닥에 몸을 바짝 낮췄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토르는 금방이라도 병사들로부터 달아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었다. 때마침 리스 왕자가 외벽의 성문을 열고 나타나 양쪽 길을 살피며 토르의 위치를 확인했다.

리스 왕자는 서둘러 다가와 토르를 끌어안았다. 토르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끽끽거리는 소리가 들려 아래를 살펴보니 토르가 아끼는 크론이 리스 왕자의 셔츠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리스 왕자가 셔츠 안으로 손을 뻗어 크론을 토르에게 건넸다.

토르가 목숨을 구해줬던 백색의 새끼표범 크론이 토르의 품으로 뛰어들자 토르는 크론을 안아줬다. 크론은 칭얼거리듯 낑낑거리며 토르의 얼굴을 핥았다.

리스 왕자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병사들이 널 잡아갈 때, 크론도 널 쫓아가길래 내가 크론을 안전하게 데리고 있었어.”

토르는 고마운 마음에 리스 왕자의 팔뚝을 잡았다. 크론이 계속해서 토르를 핥는 바람에 토르는 그만 웃음이 나와버렸다.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고, 크론,” 토르가 웃으며 크론에게 입을 맞췄다. “이제 조용히 해야 해, 병사들한테 들킬지도 모르니까.”

크론은 마치 토르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를 낮췄다.

“어떻게 도망쳐 나온 거야?”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리스 왕자가 물었다.

토르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여전히 자신이 가진 영문을 모르는 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볼까 두려웠다.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토르가 대답했다. “탈출할 기회가 있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죠.”

“군중들이 널 내버려뒀다는 게 놀라워,” 리스 왕자가 대답했다.

“어둡잖아요,” 토르가 말을 이었다. “누구도 절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아요. 어쨌든 아직 까지는요.”

“왕실 내 모든 병사들이 널 찾고 있다는 건 아니? 폐하께서 단검에 찔리셨다는 건 들었어?”

토르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서는 괜찮으신가요?”

리스 왕자가 고개를 떨궜다.

“아니,” 왕자의 목소리가 침울했다. “폐하께서는 위중하셔.”

토르는 진심으로 자신의 친부께서 위중하신 것 같은 마음에 가슴이 메어졌다.

“왕자님은 제가 이 일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걸 알고 계시죠, 그렇죠?” 토르는 희망을 담아 리스 왕자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찌 생각하던 상관 없었지만, 맥길 왕의 막내 아들이자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리스 왕자만은 자신의 결백을 알아주길 바랬다.

“물론이지,” 리스 왕자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여기 이렇게 왔겠어.”

토르는 커다란 안도감을 느꼈고, 진심을 담아 리스 왕자의 어깨를 잡았다.

“그렇지만 왕국의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널 믿어주지 않을 거야,” 리스 왕자가 말을 이었다. “네가 지낼 수 있는 안전한 곳은 여기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이야. 네게 가장 빠른 말과 필요한 물품을 마련해 줄게. 널 여기서 가장 먼 곳으로 보내줄게. 이 모든 게 잠잠해질 때까지 몸을 숨기고 있어. 진짜 암살자를 찾을 때까지. 지금은 그 누구도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어.”

토르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떠날 수 없어요,” 토르가 대답했다. “그럼 제 죄를 인정하는 듯 보일 거에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제가 한 짓이 아니라는 걸 믿게 할 필요가 있어요. 어려운 상황에서 도망만 칠 수는 없어요. 결백을 밝혀야 해요.”

이번에는 리스 왕자가 고개를 저었다.

“네가 여기 머무르면 병사들이 널 찾아낼 거야. 다시 구금될 거라고. 그럼 처형되겠지. 그렇지 않으면 저 군중들에게 먼저 목숨을 잃게 되던지.”

리스 왕자는 오랫동안 진지하게 토르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이내 걱정이 가득했던 리스 왕자의 표정이 부드럽게 누그러졌다. 결국 리스 왕자는 천천히 토르의 의견에 수긍했다.

“네가 자랑스러워. 그리고 넌 미련해. 참 미련해. 그래서 내가 널 맘에 들어 하는 거지.”

리스 왕자가 미소를 지었다. 토르도 함께 미소 지었다.

“폐하를 뵙고 싶어요,” 토르가 말했다. “폐하를 직접 만나 뵙고 제가 아니라고, 저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설명 드려야 해요. 만약 그럼에도 폐하께서 처형을 원하신다면, 그 뜻에 따르겠어요. 그 전에 제겐 해명할 기회가 주어져야 해요. 폐하께서 알아주셨으면 해요. 그게 제가 바라는 전부에요.”

리스 왕자는 토르의 입장을 정리하며 진지하게 토르를 바라봤다. 마침내, 긴 기다림 끝에 리스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 널 데려다 줄 수 있어. 난 폐하의 거처로 가는 또 다른 길을 알고 있거든. 그러나 아주 위험해. 그렇기 때문에 폐하게 거처에 도착하면 그때부터는 너 혼자 움직여야 해. 단, 나오는 길은 없어. 그리고 이후 네게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즉, 네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야. 그런데도 정말로 폐하께 해명할 기회를 얻고 싶어?”

토르는 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리스 왕자가 대답하며 몸을 아래로 숙이더니 토르에게 망토를 건넸다.

망토를 받아 든 토르는 놀란 눈으로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리스 왕자가 이 모든걸 미리 준비해 둔 것 같았다.

토르가 고개를 들자 리스 왕자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네가 여기 남을 만큼 미련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난 내 가장 친한 친구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제4장


개리스 왕자는 빠른 거름으로 거처로 향했다. 축제에서 벌어진 일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치밀하게 계획한 일들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걸 용납하기가 힘들었다. 개리스 왕자는 토르라는 멍청한 외부인이 어떻게 그의 계획을 알아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토르라는 녀석이 아버지의 술잔을 낚아채버리기까지 했다. 개리스 왕자는 토르가 몸을 날려 술잔을 엎어버린 순간을 떠올렸다. 술잔이 바닥에 떨어져 와인이 쏟아지는 걸 보며, 그의 모든 꿈과 염원 또한 함께 쏟아지는 걸 바라봐야 했다.

개리스 왕자가 망가져버린 순간은 바로 그 때였다. 그 동안 그를 지탱해주었던 욕망이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난데없이 나타난 개가 와인을 핥고 모두 앞에서 죽은 순간 개리스 왕자는 이제 자신의 모든 것이 끝났다는 걸 예감했다. 눈 앞에서 그간 살아왔던 나날들이 스쳐갔다. 자신의 독살 음모가 이제 만 천하에 드러나 아비를 죽이려 한 죄로 평생을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될 것임을 예감했다. 최악의 상황엔 죽음을 면치 못한다. 바보 같은 계획이 아닐 수 없었다. 이따위 암살계획은 애초부터 진행하는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 마녀를 만나지 않았어야 했다.

그러나 적어도 개리스 왕자는 빠른 조치를 취해 추궁을 막았다. 절묘한 순간에 기회를 포착해 벌떡 일어나 가장 먼저 토르에게 죄를 뒤집어 씌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렇게 찰나의 순간에 적절하게 대응한 건 참 잘한 일이었다. 위기가 닥치자 기발하게도 벗어날 계책이 떠올랐고 그도 놀랄 만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병사들은 토르를 끌고 갔다. 이후 축제의 분위기는 다시 고조됐다. 물론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지만 적어도, 모든 의심은 토르에게 정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개리스 왕자는 이대로 모든 게 머무르길 바랬다. 맥길 왕을 암살하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었기에 이번 암살 시도를 좀 더 세밀하게 조사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독살 시도는 어리석은 짓이었다. 아버지는 막강했다. 개리스 왕자는 이를 간파했어야 했다. 개리스 왕자는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었다. 이제 그는 모든 의심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더 늦기 전에 무슨 수를 쓰든 토르에게 확실히 죄를 묻게 해 그를 처형시켜야 했다.

개리스 왕자는 스스로의 잘못을 만회하려 했다. 독살 시도가 수포로 돌아간 뒤 그는 암살 계획을 무산시켰다. 이제 개리스 왕자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자신의 계획이 어긋난 걸 보며 자신의 마음 속 어딘가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원치 않는 다는 걸 느꼈으며 더불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는 왕이 되지 못한다. 아마도 평생 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축제를 끝으로 개리스 왕자는 마침내 타오르던 야심을 단념할 수 있었다. 적어도 더 이상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비밀을 품고, 은폐하고, 혹시라도 들킬까 봐 마음을 졸여야 하는 커다란 고통을 감내하며 다시 그런 시도를 하고 싶지 않았다. 개리스 왕자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울 일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다 보니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마침내 개리스 왕자는 서서히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제서야 본래의 평정심이 돌아온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취침을 준비하던 그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펄스가 불쑥 나타났다. 미친듯한 모습으로 눈을 크게 뜨고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듯 방으로 들어왔다.

“죽었어!” 펄스가 소리쳤다. “죽었어! 내가 죽였어. 그가 죽었어!”

펄스는 발작을 하는 듯 울부짖었다. 개리스 왕자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술에 취한 거라 생각했다.

펄스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방안을 이리저리 오가며 벌벌 떨고 있었고 울부짖으며 두 손을 맞잡고 있었다. 개리스 왕자는 펄스의 손바닥에 묻은 피를 주시했다. 펄스의 노란 상의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개리스 왕자의 심장이 철렁했다. 펄스가 누군가를 살해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 누구인 것인가?

“누가 죽은 거야?” 개리스 왕자가 물었다. “도대체 누구 얘길 하는 거야?”

그러나 여전히 펄스는 제정신이 아닌 듯 넋이 나가 있었다. 개리스 왕자는 펄스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세게 쥐고 흔들어댔다.

“대답해!”

눈을 뜬 펄스는 소의 눈망울 같은 두 눈으로 개리스 왕자를 바라봤다.

“네 아버지! 폐하! 왕이 죽었어! 내 손에!”

펄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개리스 왕자의 심장을 찌르는 듯 했다.

개리스 왕자는 놀란 눈으로 펄스를 주시하며 온몸이 굳어가는 걸 느꼈다. 왕자는 어깨를 쥔 손을 풀고 뒤로 물러나 숨을 고르려 노력했다. 펄스의 몸에 묻은 피를 보자 펄스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왕자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펄스? 저 얌전한 아이가? 내가 아는 이들 중 가장 마음이 약한 녀석이? 내 아버지를 죽였다고?

“그런데…그게 말이 돼?” 개리스 왕자가 물었다. “대체 언제?”

“왕의 침실에서 그랬어,” 펄스가 대답했다. “바로 방금 점에. 폐하를 찔렀어.”

이제서야 실감이 난 개리스 왕자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방문이 열린걸 확인하고는 달려가 병사들이 아무것도 보지 못했음을 확인하고는 문을 닫았다. 다행히도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개리스 왕자는 방문을 닫았다.

왕자는 재빨리 방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정신을 추스르지 못하는 펄스를 진정시켜야 했다. 펄스에게 물어봐야 할 게 많았다.

왕자는 펄스의 어깨를 잡아 돌려 세웠다. 마침내 펄스는 왕자를 제대로 쳐다봤다.

“내게 전부 다 털어놔,” 개리스 왕자는 냉정하게 명령을 내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설명해. 왜 그런 거지?”

“왜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의아해하며 펄스가 되물었다. “넌 폐하를 없애고 싶어 했잖아. 독살이 실패했고. 내가 널 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게 네가 원하는 거라 생각했거든.”

개리스 왕자는 고개를 저었다. 왕자는 펄스의 셔츠를 움켜쥐고 몇 번이나 흔들어댔다.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개리스 왕자가 소리쳤다.

왕자는 자신의 모든 삶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것 같았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새삼 충격적이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그 누구보다 아버지가 독주를 마시고 사망하길 바랬었다. 그러나 지금 아버지가 죽었다는 생각에 마치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듯 가슴이 저며왔다. 죄책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찌됐든 그의 마음 한 켠에서는 왕의 죽음을 바라지 않았던 것이었다. 더군다나 특히 이런 식의 죽음은 더더욱 원치 않았던 게 분명했다. 펄스의 손에. 게다가 단검에.

“이해할 수가 없어,” 펄스가 흐느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넌 폐하를 제거하고 싶어했어. 암살을 계획했었잖아. 난 네가 기뻐할 줄 알았다고!”

스스로의 모습에 놀란 개리스 왕자는 펄스의 얼굴에 정면으로 주먹을 날렸다.

“난 네게 이런 짓을 시킨 적이 없어!” 개리스 왕자가 화를 냈다. “난 절대 네게 이 따위 일을 명령한 적이 없어. 왜 죽였어? 널 봐. 피로 범벅이 돼 있잖아. 이제 우린 둘 다 끝장이야. 병사들이 우릴 잡는 건 시간문제라고.”

“아무도 못 봤어,” 펄스가 애원하듯 말했다. “근무시간 교체 때 몰래 숨어들어갔어. 아무도 날 못 봤다고.”

“그럼 단검은 어디 있는데?”

“단검은 거기 없어,’ 펄스가 떳떳하다는 듯 대답했다. “내가 바보인 줄 알아. 내가 처리 했어.”

“어떤 칼을 쓴 거야?” 개리스 왕자가 되물었다. 이 질문과 함께 왕자의 마음이 요동쳤다. 그의 죄책감은 걱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왕자는 어리석은 펄스가 남겼을 모든 흔적들과 펄스를 추적할 수 있는 혹시 모를 단서에 대한 생각에 집중했다.

“절대 추적할 수 없는 단검이야,” 펄스는 스스로 대견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냥 특색 없는 이름 모를 단검이야. 마구간에서 찾은 거야. 비슷하게 생긴 단검이 네 개는 더 있었어. 절대 추적하지 못해,” 펄스가 재차 강조했다.

개리스 왕자는 심장이 떨어지는 듯 했다.

“그거 혹시 붉은 색 손잡이에 칼날이 휘어진 짧은 검이야? 내 말 옆에 꽂혀 있던?”

펄스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개리스 왕자는 펄스를 노려봤다.

“이 머저리 녀석. 그 검은 얼마든지 추적이 가능 하다고!”

“그렇지만 아무런 표식도 없었단 말이야!” 펄스는 겁을 먹고 떨리는 목소리로 반박했다.

“칼날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지만 칼자루에 표시가 되어 있다고! 개리스 왕자가 고함쳤다. “칼자루 하단에! 넌 제대로 확인도 못했어. 멍청한 자식아.” 분노에 치민 개리스 왕자는 펄스에게 바짝 다가갔다. “내 말의 상징이 칼자루 밑에 새겨져 있다고. 그리고 왕족과 친분이 있는 자라면 누구든지 그 검이 내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어.”

왕자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펄스를 노려봤다. 펄스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 검을 어떻게 했어?” 개리스 왕자가 펄스를 재촉했다. “그 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 그 검을 가지고 왔다고 말을 하라고. 제발.”

펄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잘 처리 했어. 그 누구도 찾지 못할 거야.”

개리스 왕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확히 어디에?”

“요강 속에 담은 뒤 폐기 관에 쏟아버렸어. 폐기 관에서 쏟아진 오물 통은 매 시간마다 강에 버려진다고. 걱정 마, 왕자님. 이제 그 칼은 강물 속 깊숙이 있을 거야.”

때마침 성곽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잔뜩 긴장한 개리스 왕자는 창문으로 달려갔다. 밖을 내려다보니 군중들이 일제히 성을 에워싸는 바람에 혼란과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울려 퍼지는 종 소리가 의미하는 건 단 하나였다. 펄스가 거짓을 말한 게 아니라는 사실. 그가 왕을 암살했다는 사실.

개리스 왕자는 온 몸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이렇게 엄청난 악행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 중에서 그 누구도 아닌 펄스가 이를 수행했다는 사실은 더욱 실감하기 어려웠다.

순간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방문이 열리며 왕의 병사들이 재빠르게 들어왔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개리스 왕자는 자신과 펄스가 체포될 거라 짐작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병사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왕자님, 폐하께서 습격을 받아 자상을 입으셨습니다. 암살자가 지금 도주 중일 수 있습니다. 방안에서 안전하게 몸을 피하시길 바랍니다. 폐하께서는 위독하십니다.”

병사들의 마지막 말에 개리스 왕자의 머리카락이 꼿꼿이 일어섰다.

“위독?” 개리스 왕자가 말을 이었다. 위독이란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렸다. “아직 살아 계신가?”

“네, 왕자님. 폐하께서는 꼭 쾌차하셔서 누가 이런 극악무도한 짓을 했는지 반드시 밝혀내실 겁니다.”

짧게 예의를 갖춘 뒤 병사들은 빠르게 방 밖으로 나서며 방문을 닫았다.

개리스 왕자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펄스의 어깨를 틀어 잡아 석조 벽에 내팽개쳤다.

펄스는 커다란 눈으로 겁에 질려 말없이 왕자를 주시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개리스 왕자가 고함쳤다. “이제 우린 모두 끝났어!”

“그렇지만.. 그렇지만…” 펄스가 더듬거렸다. “…정말 죽은 줄 알았어!”

“넌 항상 확신한다고 하지,” 왕자가 분노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다 틀려!”

개리스 왕자에게 문득 한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 단검,” 왕자가 말했다. “더 늦기 전에 검을 반드시 되찾아야 해.”

“그렇지만 내가 이미 버렸어, 왕자님,” 펄스가 대답했다. “강물에 쓸려 갔을 거야!”

“폐기 관에 버렸다고 했지. 그럼 아직 강물에 버려진 건 아니야.”

“그렇지만 대체로는 그렇다고!” 펄스가 대답했다.

개리스 왕자는 더 이상 우물쭈물하는 이 머저리를 참을 수 없었다. 왕자가 지체 없이 문 밖으로 뛰어 나가자 펄스는 당황했다.

“나도 함께 갈게. 정확히 어디에 버렸는지 알려줄게,” 펄스가 말을 건넸다.

개리스 왕자는 복도에 멈춰 서서 뒤돌아 펄스를 주시했다. 피로 범벅이 된 그를 병사들이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이 의아할 뿐이었다. 운이 좋았다. 이제 펄스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골칫거리가 되어버렸다.

“두 번 말하지 않겠어,” 개리스 왕자가 분노하며 대답했다. “당장 내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은 뒤 그 옷을 태워버려. 피 묻은 흔적은 모두 지워. 그리고 성에서 사라져. 오늘 밤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어. 내 말 알아 듣겠어?”

왕자는 펄스를 뒤로 밀치고는 다시 뒤돌아 뛰었다. 복도를 지나 원형의 석조 계단을 뛰어내려가며 한 층씩 아래로 움직여 행랑채로 향했다.

마침내 왕자는 지하에 도착했고 길을 틀자 하인들이 보였다. 그들은 엄청난 크기의 화분을 닦으며 물을 끓이고 있었다. 벽돌 가마에서는 화마가 이글거리고 있었고 앞치마를 두른 하인들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저 멀리 반대편에 커다란 폐기 관이 있었다. 매 분마다 폐기 관을 통해 오물이 쏟아져 내려오며 주변으로 악취가 가득한 오물이 튀기고 있었다.

개리스 왕자는 가장 가까이 있는 하인에게 다가가 절실한 마음을 담아 그의 팔을 붙잡았다.

“저 오물 통이 언제 비워지지?” 왕자가 물었다.

“방금 전에 비우기 위해 강으로 가져갔습니다, 왕자님.”

개리스 왕자는 뒤돌아 밖으로 뛰어나갔다. 왕실의 복도를 지나 다시 석조 계단을 올라 서늘한 밤공기를 가로질렀다.

잔디밭을 지나, 숨을 헐떡이며 강으로 달려갔다.

강 주변에 큰 나무 아래에 몸을 숨길만한 장소가 있었다. 왕자는 두 명의 하인이 커다란 금속 오물 통을 기울여 강물에 오물을 쏟는 장면을 지켜봤다.

왕자는 오물 통이 완전히 뒤집혀 내부가 완전히 비워진 뒤 다시 궁궐로 실려 가는 모습을 살폈다.

마침내, 개리스 왕자는 만족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검을 보지 못했다. 그게 어디 있었든, 이제는 강물에 휩쓸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쓸려갔을 것이다. 만약 폐하께서 오늘 밤 승하하신다면, 암살자를 추적할 그 어떤 단서도 남지 않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단서를 어디서 찾는 단 말인가?




제5장


왕의 침실로 향하는 뒷길을 헤치며 토르는 리스 왕자의 뒤를 바짝 쫓았다. 그 뒤로는 크론이 함께 했다. 리스 왕자는 토르와 크론을 석조 벽면에 몰래 만들어 놓은 비밀 문으로 안내했다. 왕자는 횃불을 들고 좁은 공강의 통로로 인도했다. 이리저리 구불구불하게 난 궁궐의 내부를 걸어 들어갔다. 좁은 석조 계단을 오르니 또 다른 통로가 나타났다. 방향을 틀자 이번엔 다른 계단이 보였다. 토르는 말할 수 없이 복잡한 구조에 경이로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 통로는 수백 년 전에 왕실 내부에 비밀스럽게 만들어졌어,” 리스 왕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길을 안내하며 토르에게 설명했다. 길을 따라 올라가느라 왕자의 숨이 거칠었다. “이 길은 내 아버지의 증조할아버지였던 3대 맥길 왕께서 만드신 거야. 성이 포위당한 뒤에 탈출구 용도로 만들어놓으신 거지. 아이러니하게도 이걸 만든 뒤 맥길 왕가의 왕실은 한번도 포위당한 적이 없었어. 그래서 이 통로는 수백 년 동안 사용된 적이 없었지. 여길 막아놨었는데 내가 어렸을 때 우연히 발견했어. 나는 아무도 모르게 이 통로를 이용해 왕실 내부를 돌아다니는 게 좋아. 그웬 누나와 고드프리 형과 나는 어렸을 때 여기서 숨바꼭질을 했었어. 캔드릭 형은 숨바꼭질을 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았고 개리스 형은 우리와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 횃불은 사용 금지였어. 그게 우리의 규칙이었지. 칠흑 같은 암흑만이 있었어. 그땐 그게 참 무서워 겁을 냈었지.”

토르는 리스 왕자가 안내하는 놀라울 정도로 기괴한 길을 열심히 따라 갔다. 리스 왕자는 확실히 통로의 모든 길을 훤히 꿰뚫고 있음이 분명했다.

“어떻게 이 길을 모두 기억하시죠?” 토르가 놀라 물었다.

“어렸을 때 왕실에서 외롭게 자라서,” 리스 왕자가 대답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은 다 나이가 많았고, 또 왕의 부대에 합류하기엔 내 나이가 너무 어렸고, 그래서 아무 것도 할게 없을 때 난 내 스스로에게 이 곳의 구석구석을 확인하라는 임무를 부여했었지.”

두 사람은 또다시 방향을 틀었다. 석조 계단을 세 걸음 내려가 좁은 벽으로 방향을 바꾼 뒤 다시 길고 긴 계단을 내려갔다. 마침내 리스 왕자는 먼지로 가득한 묵직한 떡갈나무로 만든 문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왕자는 한쪽 귀를 문으로 바짝 붙이고는 귀를 기울였다. 토르는 왕자 옆으로 다가갔다.

“이게 무슨 문이죠?” 토르가 물었다.

“쉿,” 리스 왕자가 주의를 줬다.

토르는 질문을 멈추고 한쪽 귀를 문에 대어 주의를 기울였다. 크론이 토르 옆에 앉아 토르를 바라봤다.

“이건 아버지 침실로 향하는 뒷문이야,” 리스 왕자가 속삭였다. “지금 아버지 곁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토르는 방안의 소리를 들었다. 문 안쪽에서 음성이 들렸다.

“사람들이 가득 있는 것 같아,” 왕자가 말했다.

리스 왕자는 고개를 돌려 토르를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넌 짚을 지고 불에 뛰어들게 될 거야. 폐하의 사령관들이 모두 저 안에 있고, 자문단과 고문관 그리고 내 가족들이 저 안에 있어. 분명 저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널 살인자로 여기며 경계할거야. 잔뜩 성이 난 군중들에게 뛰어드는 것과 다를 게 없어. 만약 폐하께서 여전히 네가 독살을 꾸몄다고 생각하고 계시다면 넌 끝이야. 이래도 정말로 이걸 해야겠어?”

토르는 크게 침을 삼켰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었다. 인생의 큰 전환점 앞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자 목이 바짝 타 들어갔다. 토르가 선택할 수 있는 쉬운 길은, 다시 이 길을 돌아가 성 밖으로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럼 왕실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서 안전하게 은신하며 살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토르는 저 문을 열고 들어가 아마도 그때 보았던 형편없을 인간들과 지하감옥에서 평생을 살게 되거나 또는, 처형을 당하게 된다.

토르는 숨을 크게 쉬고 결정을 내렸다. 물러설 수 없었다. 당당히 악마의 장난을 마주해야 했다.

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마 말을 꺼내기에 겁이 났다. 입을 열면 마음이 바뀔 것 같았다.

리스 왕자도 동의하는 표정으로 토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왕자는 철문 고리에 힘을 주며 어깨로 문을 밀었다.

문이 열리자 시야에 밝게 빛나는 횃불이 들어왔다. 토르가 서 있는 곳은 왕의 개인 침실 정 중앙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리스 왕자와 크론이 그 옆을 지켰다.

누워있는 맥길 왕 곁으로 적어도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몇 명은 왕의 곁에 서 있었고 나머지는 무릎을 굽히고 있었다. 자문위원단들과 사령관들이 아르곤, 왕비, 캔드릭 왕자, 고드프리 왕자 그리고 그웬돌린 공주 곁에 함께 서 있었다. 왕의 죽음을 지키고 있었다. 토르는 맥길 왕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 난데없이 등장한 셈이었다.

방안의 분위기는 어두웠고 모든 이들의 표정은 침울했다. 맥길 왕은 베개에 기대 누워 있었고 토르는 맥길 왕이 적어도 아직까지는 살아 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일제히 모든 시선이 난데없이 나타난 토르와 리스 왕자에게 향했다. 방 한가운데서 자신과 리스 왕자가 비밀의 문을 열고 갑자기 나타났으니 침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분명 적잖이 당황하고 놀랠 거라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저 아이가 범인이야!” 누군가가 증오에 섞인 말투로 토르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자가 감히 폐하를 독살하려 했어!”

사방에서 병사들이 토르를 향해 다가왔다. 토르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막막했다. 한편으로는 다시 돌아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그렇게 하면 분노에 사로잡힌 군중들을 마주해야 했다. 토르는 왕에게 해명을 해야 했다. 병사들이 재빨리 손을 뻗어 토르를 붙잡으러 일제히 달려들었다. 크론이 토르의 곁을 지키며 병사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으르렁거렸다.

그 자리에 서 있던 토르는 순간적으로 몸 속의 에너지가 발현돼 온몸에 기운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토르는 본의 아니게 한 손을 올려 자신의 에너지를 병사들에게 보냈다.

그러자 마치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서 멈춰 움직이지 못하는 병사들의 모습에 토르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체 불명의 에너지가 병사들이 토르에게 달려들 수 없도록 막아주고 있었다.

“감히 네가 어찌 이곳에 나타나 마법을 부리는 것이냐!” 총 사령 고문관인 브롬이 검을 뽑아 들며 고함쳤다. “폐하를 음해하려던 시도가 한번으론 부족했단 말이냐?”

총 사령 고문관이 검을 들고 토르에게 다가가자 토르는 전에 없던 강력한 기운을 느꼈다. 토르는 눈을 감고 집중했다. 총 사령 고문관이 지닌 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검의 모양과 금속재질을 느끼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검과 하나가 됨을 느꼈다. 토르는 마음속으로 검이 멈추길 염원했다.

총 사령 고문관은 놀란 눈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멈췄다.

“아르곤!” 총 사령관은 소리쳤다. “이 마법을 멈춰주시오! 이 소년을 멈춰주시오!”

아르곤은 앞으로 나서 천천히 그의 망토를 눌러 썼다. 그는 강렬하게 타오르는 눈빛으로 토르를 주시했다.

“저 아이를 막을 이유가 없소,” 아르곤이 대답했다. “저 아이는 누굴 헤치러 이곳에 온 것이 아니오.”

“제 정신이오? 저 아이는 폐하를 죽일 뻔 했소!”

“그건 당신 생각이오,” 아르곤이 대답했다. “내가 보는 건 다르오.”

“그를 내버려 두어라,” 어디선가 엄중하고 깊은 목소리가 울렸다.

맥길 왕이 몸을 일으키자 모두가 시선을 왕에게 돌렸다. 왕은 기력이 많이 쇠해 보였다. 목소리를 내는 것 조차 힘에 겨웠다.

“저 아이를 보고 싶구나. 저 아이는 나를 찌르지 않았다. 난 그자의 얼굴을 봤어, 저 아이가 아니야. 토르는 결백하다.”

서서히 사람들의 경계가 풀어지기 시작했고 토르 또한 그제서야 마음을 놓고 병사들을 자유롭게 풀어줬다. 병사들은 마치 토르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인 듯 토르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들의 검을 칼집에 다시 집어 넣었다.

“아이를 보고 싶다,” 맥길 왕이 명령을 내렸다. “단 둘이 보겠다. 모두 물러나거라.”

“폐하,” 총 사령관 브롬이 입을 열었다. “정말 그래도 안전하겠습니까? 저 아이와 단둘이요?”

“토르를 내버려두거라,” 왕이 다시 한번 명령했다. “이제 모두 물러가거라. 전부 다. 내 가족들도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느라 방안에는 깊은 적막이 흘렀다. 토르는 이 모든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고 그래서인지 마치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굳어있었다.

가족들을 포함해 차례대로 한 사람씩 방에서 물러났다. 크론 또한 리스 왕자와 함께 방을 나갔다.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던 왕의 침실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방문이 닫히고 토르와 맥길 왕만이 적막 속에 남겨졌다. 토르는 믿을 수가 없었다. 창백한 안색의 맥길 왕이 고통을 인내하며 침상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이 느껴졌다.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마치 자신의 일부가 저 침상에서 죽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무엇보다 맥길 왕이 쾌차하길 바랬다.

“이리 오거라, 토르,” 맥길 왕이 쉬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이듯 힘없이 말했다.

토르는 몸을 숙이고 재빨리 왕의 곁에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맥길 왕은 힘없이 손목을 내밀었고, 토르는 왕의 손을 잡아 입을 맞췄다.

토르는 고개를 들어 맥길 왕의 입가에 희미하게 번진 미소를 봤다. 순간 토르의 빰에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스스로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폐하,” 토르가 참지 못하고 서두르며 입을 열었다. “제발 저를 믿어주십시오. 저는 폐하를 독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꿈에서 본 것입니다. 저도 알지 못하는 힘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그저 폐하께 알려드리려 했을 뿐입니다. 제발 부디 저를 믿어주십시오.”

맥길 왕은 손바닥을 들어올렸고 토르는 말을 멈췄다.

“내가 오해했구나,” 왕이 대답했다. “다른 이의 칼에 찔린 뒤 네가 범인이 아님을 깨달았다. 넌 그저 날 구하려 했던 것이었구나. 날 용서해다오. 넌 충심을 다했어. 아마도 궁궐 안의 유일한 충심일 수도 있겠지.”

“제가 틀렸기를 바랬습니다,” 토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안전하시길 바랬습니다. 제 꿈이 단지 환영이기만을 바랬고 폐하께서 절대 암살당하시는 일은 없길 바랬습니다. 아마도 제가 틀린 것일 겁니다. 폐하께서는 꼭 이겨내실 겁니다.”

맥길 왕은 손을 저었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구나,” 왕이 대답했다.

토르는 그런 일이 일어나질 않길 바라며 침을 꿀꺽 삼켰지만 이제 시간이 얼마 없음을 짐작했다.

“누가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아시는지요, 폐하?” 토르는 꿈을 꿨던 순간부터 참을 수 없이 궁금했던 질문을 내뱉었다. 대체 누가 왕을 없애고 싶어하는지, 또는 왜 왕을 제거하려고 하는지 토르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맥길 왕은 천장을 바라보고 간신히 눈을 깜빡였다.

“얼굴을 보았다. 아는 얼굴이지.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구나.”

왕은 토르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젠 다 소용 없다. 가야 할 시간이구나. 그자의 손에 죽건, 또는 다른 누구였건, 결과는 어차피 같단다. 지금 중요한 건,” 왕은 이 말과 함께 손을 뻗어 토르의 팔목을 잡았다. 그 힘이 너무 세 토르는 크게 놀랐다. “내가 떠난 뒤에 벌어질 일이란다. 이곳은 왕이 없는 왕국이 될 거야.”

맥길 왕은 토르로서는 이해 할 수 없는 강렬한 눈빛으로 토르를 바라봤다. 토르는 왕이 건네는 말의 의미를, 또는 요구하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토르는 묻고 싶었지만 맥길 왕이 얼마나 힘겹게 숨을 고르며 의사를 전달하는지 알고 있기에 질문을 참고 계속 경청했다.

“아르곤이 맞았다,” 맥길 왕은 손목의 힘을 풀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 운명은 내가 타고난 운명보다 위대해.”

맥길 왕의 말에 토르는 감전된 듯한 충격을 느꼈다. 토르의 운명? 왕보다 위대한 운명? 맥길 왕이 직접 아르곤과 자신에 대해 상의 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이 왕보다 위대하다고 말하는 사실 자체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자 맥길 왕이 망상에 빠진 것일까?

“난 널 선택했다. 널 내 아들로 삼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 이유가 뭔질 알겠느냐?”

그 이유가 절실히 궁금한 토르는 고개를 저었다.

“왜 내가 널 이곳에 남겼는지 모르겠느냐, 너만 홀로, 나의 마지막 순간에?”

“폐하, 송구스럽습니다,” 토르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두 눈에 서서히 힘이 풀리며 맥길 왕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서 아주 먼 곳에 위대한 곳이 있단다. 와일드 너머에, 용의 터전 너머에. 그곳의 드루이드의 터전이지. 그곳에서 네 모친이 왔단다. 넌 반드시 그곳으로 가 답을 얻어야 한다.”

맥길 왕은 눈을 크게 뜨고 강렬하게 토르를 바라봤다. 토르는 차마 헤아릴 수 없는 눈빛이었다.

“이 왕국은 네 손에 달려있다,” 맥길 왕이 말을 이었다. “넌 남들과 다르단다. 특별해. 네가 누구인지를 이해할 때까지, 이 왕국은 절대 평탄하지 못하겠지.”

눈을 감은 맥길 왕의 숨소리가 더없이 희미했다. 한숨 한숨이 순탄치 않았다. 토르의 손목을 쥔 힘이 천천히 힘을 잃어갔다. 토르는 눈물을 흘렸다. 왕이 건넨 말을 이해하고자 할수록 토르의 마음이 소용돌이쳤다.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걸 까?

왕은 무언가 힘없이 속삭였다. 그러나 쉽게 들리지 않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토르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맥길 왕의 입가에 귀를 기울였다.

맥길 왕은 마지막으로 최후의 기력을 발휘해 고개를 들었다.

“내 원수를 갚거라.”

이 말과 함께 맥길 왕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잠시 동안 누워 있었고, 이후 눈을 크게 뜬 채 고개를 떨군 뒤 그대로 굳어있었다.

죽음이 드리웠다.

“안돼!” 토르는 통곡했다.

토르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병사들에게까지 들려, 순식간에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방 안으로 달려들어왔다. 그의 주변으로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렴풋이 성의 종소리가 끊임없이 계속해서 울리는 걸 들었다. 울려대는 종 소리에 맞춰 관자놀이 부위가 지끈거리며 요동쳤다. 그리고 잠시 뒤 방안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흐릿해졌다.

토르는 돌 바닥에 쓰러지며 정신을 잃었다.




제6장


격한 돌풍이 개리스 왕자의 얼굴을 강타하자 개리스 왕자는 고개를 들어 눈물을 훔쳤다. 흐릿한 빛과 함께 첫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 막 날이 밝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국에서 멀리 떨어진 콜비안 협곡에는 왕의 가족, 친구 그리고 가까운 왕족 수백 명이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있었다. 이들 뒤로는 왕의 장례를 멀리서나마 지켜보려는 수천 수만의 인파들을 병사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군중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슬픔은 진심이었다. 맥길 왕은 두말 할 나위도 없이 군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었다.

개리스 왕자는 직계 가족과 함께 맥길 왕의 사체 주변으로 반원을 그리며 서 있었다. 맥길 왕의 사체는 땅속으로 이동시킬 수 있도록 밧줄로 묶어 지탱해놓은 판자 위에 놓여있었고 그 밑으로는 크고 깊게 판 무덤 자리가 있었다. 장례식에만 갖춰 입는 짙은 다홍빛 망토를 걸친 아르곤이 사람들 앞에 나섰다. 망토를 눌러써 얼굴이 가리워진 아르곤은 묘사할 수 없는 표정으로 왕을 내려다봤다. 개리스 왕자는 아르곤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그의 표정을 읽어보려 애썼다. 아르곤은 개리스 왕자가 맥길 왕을 살해한 걸 알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모두에게 이를 알릴 것인가, 또는 운명의 흐름을 그저 지켜볼 것인가?

개리스 왕자에겐 불행하게도, 눈에 가시 같은 토르의 결백이 밝혀졌다. 토르가 지하 감옥에 있는 동안 왕을 암살했다는 건 명백하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맥길 왕은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토르의 무죄를 입증해줬다. 이 모든 것이 개리스 왕자에겐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 사건을 진상을 명명백백히 파헤치기 위해 이미 진상 조사위원회가 구성됐다. 개리스 왕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제 곧 땅속에 묻힐 아버지의 사체를 보며 요동치는 심장을 느꼈다. 그도 함께 묻히고 싶은 마음이었다.

범인이 펄스로 좁혀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개리스 왕자는 펄스와 함께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게 될 게 뻔했다. 왕자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다른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게끔 신속하게 조치를 취해야 했다. 개리스 왕자는 혹시 주변의 인물들이 자신을 의심하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그는 편집증 환자처럼 주변의 시선을 살펴 그 누구도 자신을 주시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왕자의 주변에는 리스 왕자와 고드프리 왕자, 캔드릭 왕자 그리고 그웬돌린 공주와 왕비가 서 있었다. 왕비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 드리워 있었다. 왕비는 분열증세를 보였다. 실제로 맥길 왕의 사망 이후부터 왕비는 말문이 막혀버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개리스 왕자가 듣기로는, 왕비가 왕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심각한 정신적 충격과 함께 마비 증상이 왔다고 했다. 왕비의 한쪽 얼굴은 굳어버렸고 무언가를 말할 때는 말이 느릿느릿했다.

개리스 왕자는 왕비 뒤로 줄지어 선 왕의 자문위원단들의 표정을 주시했다. 앞으로는 총 사령 고문관인 브롬과 왕의 부대 총 책임자인 콜크 사령관이 서 있었고 그 뒤로는 수도 없이 많은 고문들이 늘어서 있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슬픈 표정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개리스 왕자는 이들의 이면을 누구보다 잘 파악했다. 자문단과 고문들, 그리고 사령관들과 모든 귀족 및 영주들 모두가 왕의 죽음을 아랑곳하지 않는 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개리스 왕자는 이들의 얼굴에서 야심을 포착했다. 권력을 향한 탐욕. 모두가 왕의 사체를 바라보며 다음 왕좌에 앉게 될 인물이 누가 되야 할지를 계산하는 듯 했다.

그것이야 말로 개리스 왕자가 궁금한 것이었다. 이렇게 혼란을 이룬 암살의 여파는 무엇일까? 만약 이번 일이 깔끔하게 잘 마무리되어 다른 누군가에게 죄를 덮어씌운다면, 개리스 왕자의 계획은 완벽하게 마무리되어 왕좌에 앉을 수 있게 된다. 어찌됐든 그는 적자에 장자였다. 맥길 왕이 그웬돌린 공주에게 승계를 하겠다고 선언하긴 했으나, 당시 형제들 외에는 아무도 그 자리에 함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왕은 이를 공식적으로 표명하지 않았다. 개리스 왕자는 자문위원단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들에겐 법이라는 정당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공식 표명 없이 그웬돌린 공주가 왕좌에 오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왕좌의 기회는 다시 개리스 왕자에게 돌아오게 된다. 정당한 절차를 거쳐 개리스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겠다 수락만 한다면 그가 바로 왕이 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법이었다.

그의 형제들은 분명 그에게 맞설 것이다. 다른 왕자들은 맥길 왕과의 회담을 기억하며 그웬돌린 공주가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캔드릭 왕자가 왕권을 욕심 낼 일은 만무했다. 그러기엔 그의 심성이 너무 착했다. 고드프리 왕자는 왕권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리스 왕자는 아직 어렸다. 개리스 왕자를 위협할 유일한 인물은 바로 그웬돌린 공주였다. 그럼에도 개리스 왕자는 낙관적이었다. 자문단이 십대 계집아이를 링 대륙을 통치할 왕으로 모실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왕의 공식 표명이 없었기 때문에 자문단은 이를 핑계로 공주에게 왕위를 허락하지 않아도 될 완벽한 이유가 있었다.

개리스 왕자의 심중 속에 있는 진정한 위협은 바로 캔드릭 왕자였다. 어찌됐든, 개리스 왕자 자신은 모두에게 미움을 사고 있는 반면, 캔드릭 왕자는 자문단과 기사들 모두에게 신임을 얻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자문단이 얼마든지 왕권을 캔드릭 왕자에게 넘길 확률이 컸다. 개리스 왕자가 왕위에 빨리 오를수록, 왕권을 이용해 좀더 빨리 캔드릭 왕자를 견제할 수 있었다.

개리스 왕자의 손에 무언가가 당겨지는 느낌이 들어 아래를 보니 쥐고 있던 밧줄이 움직이며 왕자의 손바닥을 쓸고 있었다. 맥길 왕의 관을 내리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개리스 왕자와 함께 각자 밧줄을 쥐고 있던 왕자들이 서서히 줄을 풀어 관을 내리고 있었다. 개리스 왕자 쪽으로 관이 기울어졌다. 개리스 왕자가 미처 줄을 제대로 풀지 못한 것이었다. 개리스 왕자는 다른 손을 뻗어 줄을 풀며 수평을 맞췄다.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인의 마지막 길 앞에서도 그는 아버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저 멀리 궁에서 종소리가 울려오자 아르곤이 앞으로 나와 손바닥을 높이 들었다.

“잇소 오미너스 도미 코 레세피아…”

수천 년 전 개리스 왕자의 조상이었던 고대 링 대륙의 왕족이 사용하던 왕족의 언어, 자취를 감춘 링 대륙의 언어였다. 개리스 왕자의 개인 교사는 개리스 왕자가 어렸을 때 이 언어를 지도했다. 그리고 이 언어야말로 왕권 승계를 위해 반드시 알아둬야 하는 언어였다.

아르곤이 갑자기 멈춰 고개를 들고 개리스 왕자를 정면으로 주시했다. 아르곤의 반투명한 눈동자가 마치 개리스 왕자를 태우는 것 같은 느낌에 왕자는 등줄기에 한기를 느꼈다. 왕국 전체가 모두 자신을 주시하는 것만 같아 왕자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아르곤의 저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가 눈치챌까 두려웠다. 아르곤의 시선에서 자신이 암살에 연루됨을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 풍겨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아르곤은 인간의 운명이란 우여곡절에 관여하길 거부하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아르곤은 과연 그렇게 침묵을 지킬 것인가?

“맥길 왕은 훌륭하고 정당한 왕이었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깊은 목소리로 아르곤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맥길 왕은 왕으로서 선대 왕들의 자부심과 존경심을 발휘했고, 그 동안 누려보지 못했던 풍요와 평화를 왕국에 선물했소. 신의 뜻에 따라 왕은 조기에 생을 마쳤소. 그럼에도 그는 풍부하고 깊은 유산을 남겼소. 이제는 우리가 그 전통을 이을 차례요.”

아르곤은 잠시 침묵했다.

“링 대륙의 서부 왕국은 오랜 세월 이곳을 탐해온 불길한 적들로부터 사방이 둘러 쌓여 있소. 그리고 캐니언 협곡 너머에 자리잡은 에너지 장벽만이 이곳을 보호해주는 유일한 장치요. 그 너머에는 이 왕국을 붕괴하려는 미개한 생명체들이 숨쉬고 있소. 링 대륙 내에서도 하이랜드의 반대편에는 우리를 위협하는 가문이 존재하오. 우리는 현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번영과 평화 속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안전은 순간일 뿐이오. “

“왜 신은 우리에게서 가장 선하고 현명하고 공정했던 왕을 데려간 것인가? 왜 그의 운명은 이러한 암살로 마감하게 됐는가? 인간은 모두 운명의 손에 좌우되는 꼭두각시일 뿐이오. 이렇게 모든 이들 위에서 군림하던 왕도 땅 속에 잠들게 됐소. 우리가 고심해야 할 문제는 바로 우리가 무엇을 위해 고군분투하느냐가 아닌,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가요.”

아르곤은 고개를 숙였다. 밧줄을 풀어 관을 내리는 개리스 왕자의 손바닥이 타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마침내 관은 쿵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닿았다.

“안돼!” 비통한 외침이 들렸다.

그웬돌린 공주였다. 넋이 나간 공주는 깊게 판 구덩이 속으로 빠지겠다는 듯 달려들었다. 리스 왕자가 달려 나와 뒤에서 공주를 붙잡았다. 캔드릭 왕자도 나서 공주를 진정시켰다.

그러나 개리스 왕자는 공주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공주의 행동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만약 공주가 아버지와 함께 묻히길 희망한다면 선뜻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그랬다, 정말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

토르는 관에서 한 반짝 떨어진 곳에서 맥길 왕의 사체가 땅속으로 묻히는 걸 지켜봤다. 주변의 경관이 가히 압도적이었다. 왕은 자신이 묻힐 장소로 매우 장엄한 곳을 선택했다. 왕국의 가장 높은 절벽 가장자리에 자리잡은 이곳은 장엄한 높이를 자랑하듯 마치 구름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았다. 첫 태양이 하늘 높이 솟아 오르자 구름 빛이 주황, 초록, 노랑,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럼에도 마치 왕국 전체가 통한에 빠진 듯 안개가 자욱한 날이었다. 토르 옆에는 크론이 훌쩍이고 있었다.

새 울음소리가 들려 하늘을 보니 에스토펠레스가 원을 그리듯 하늘을 날며 지켜보고 있었다. 토르는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지난 며칠간 일어난 일을 실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 왕의 가족과 함께 이곳에 서서 자신이 그토록 충성하고 사랑했던 왕이 차가운 땅속으로 묻히는 광경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토르는 이제서야 진심으로 자신을 자식처럼 대해준 누군가를 만났는데 이제 그 아버지 같은 존재가 사라져버렸다. 그 무엇보다 왕이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넌 남들과 다르단다. 특별해. 네가 누구인지를 이해할 때까지, 이 왕국은 절대 평탄하지 못하겠지.

폐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신 걸까? 나는 정말 무구인가? 내가 어떻게 특별하단 말인가? 폐하께서 그걸 어떻게 알고 계시단 말인가? 나의 운명이 이 왕국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폐하께서 정신을 잃고 허언을 하신 것일까?

이곳에서 아주 먼 곳에 위대한 곳이 있단다. 와일드 너머에, 용의 터전 너머에. 그곳의 드루이드의 터전이지. 그곳에서 네 모친이 왔단다. 넌 반드시 그곳으로 가 답을 얻어야 한다.

폐하께서 어떻게 내 모친을 알고 계실까? 내 모친이 어디에 있는지 폐하께선 어떻게 아시는 걸까? 그리고 내 모친은 어떤 답을 가지고 계시단 말인가? 토르는 항상 자신을 나아준 어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살아있는다는 말에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모친을 찾으러 나서겠다고 결정했다. 답을 얻기 위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기 위해, 그리고 왜 자신이 특별한지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종 소리가 들리자 맥길 왕의 관이 서서히 땅 속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토르는 운명이라는 게 어디까지 잔인하게 얽히고 설킬 수 있는지 궁금했다. 또한 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죽음을 예언했는지, 왜 미래를 보는 건지 알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길 바랬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차라리 모르길 바랬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왕의 승하 소식을 전해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무고한 제 3자가 되길 바랬다. 좀 더 많은 시도를 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

앞으로 왕국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왕이 부재한 왕국이었다. 누가 왕위를 승계할 것인가? 모두가 짐작하듯, 개리스 왕자가 왕이 될 것인가? 이 보다 끔찍한 일은 없었다.

토르는 장례에 참석한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다, 링 대륙 곳곳에서 올라온 귀족들과 영주들의 굳은 표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토르는 저들이, 끊임 없이 사건이 일어나는 왕국 내에서 세력을 쟁취하고 또 그 힘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인물들이라는 사실을 리스 왕자로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누가 암살자인지 알 길이 없었다. 저 표정으로 보아 마치 모두가 범인인 듯 했다. 저 사람들 모두 권력을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왕국은 분열될 것인가? 저들은 서로를 경계하고 힘을 겨룰 것인가? 내 운명은 무엇일까? 왕의 부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왕의 부대가 폐지될까? 병사들은 해체될까? 개리스 왕자가 왕이 된다면 실버들은 반란을 일으킬까?

한편 이 모든 일이 벌어진 지금, 다른 사람들이 진정 내 결백을 믿어 줄까? 다시 고향으로 추방당할까?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토르는 지금에 만족했다. 무엇보다 이 곳, 왕의 부대에 머무르고 싶었다. 모든 것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이길 바랬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왕국은 무엇보다 단단하고 영원할 것만 같았다. 맥길 왕의 통치 또한 영원할 것 같았다. 만약 매우 안전하고 견고한 무언가가 이렇게 갑자기 산산조각 나버릴 수 있다면, 그럼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희망이 있단 말인가? 더 이상 토르에겐 그 무엇도 영원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웬돌린 공주가 땅속에 묻힌 폐하에게 뛰어드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무너졌다. 리스 왕자가 공주를 붙잡자, 시중들이 깊이 파인 땅에 다시 흙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르곤은 여전히 장례 절차를 치르고 있었다. 하늘 위로 구름이 흘러가며 잠시 첫 태양을 가리웠다. 토르는 따뜻한 여름 날 갑작스럽게 차가운 바람이 스쳐감을 느꼈다.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 아래를 보니 크론이 토르의 발 밑에서 토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토르는 이제 더 이상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했다. 그웬 공주와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폐하의 죽음으로 자신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공주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해야 했다. 그녀 옆에 자신이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공주가 다시는 토르를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자신이 오해를 받고 있다는 걸, 사창가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걸 알려줘야 했다. 기회를 얻고 싶었다. 그웬 공주가 평생 자신을 내치기 전에 오해를 풀 딱 한번의 기회면 족했다.

마지막 흙을 덮고 나니 종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알아서 배열을 바꿨다. 끝이 없이 긴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모두가 한 송이의 흑장미를 손에 들고 절벽 너머까지 줄을 지어 순서대로 방금 흙을 덮은 왕의 무덤을 지났다. 토르 또한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이미 높이 쌓여있는 장미 더미에 장미 한 송이를 올리며 예를 갖췄다. 크론이 울어댔다.

군중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사방으로 분산됐다. 때마침 토르는 리스의 손을 뿌리치고 저 멀리 어딘가로 정신 없이 뛰쳐나가는 그웬 공주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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